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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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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상반기가 끝나갑니다. 나름 도서관도 안정 궤도에 올랐고 이제 슬슬 자리잡혀 가는 상황에서 정리해보는 울고 웃기. 이럴 때 애들이 이쁘고 이럴 땐 미워죽겠습니다, 라는 솔직한 토로.
- 이럴 때 이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샘이 오고 나서 우리 도서관 너무 좋아졌어요!" -> 고맙다 흑흑. 싱글싱글 웃으면서 "샘 보면 사서교사 하고 싶어요~" -> 오오 진짜? 진짜?! 감격했어ㅠㅠ 신간도서 정리해 둔 것을 보면서 "우와,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 오냐 많이 읽고 쑥쑥 자라거라. 책이나 저자에 대해 설명해 줄 때 "와 신기해, 선생님 진짜 많이 아신다. 다 읽어보신거에요?" -> 음하하하 원래 이 직업이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하는거야! (...) 나름 옷과 화장에 힘준 날 "샘 오늘 예뻐요~" -> 눈치빠른 녀석, 고맙다 흑흑흑. 매우 이상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샘 남자친구 없어요?" "응, 없어. 묻지마!" "이상하다~있으실 것 같은데~" -> 으허헝. 아부라도 진짜 고맙다. 그리고 슬프구나. (...) 급식 후식으로 받은 요거트나 우유 가져와서 내밀면서 "전 싫어해요, 샘 드세요." 라고 하길래 "이럴 땐 그렇게 멋없게 말하는게 아니라 '샘을 위해서 제가 먹고 싶은걸 참았어요~드세요~'라고 하는 거다!" 라고 가르쳐줬더니 고대로 따라할 때. -> 시킨다고 또 해요. 이쁜 것들. 학생증 없다길래 발급받을 때까지만 학생증 없이 대출해주겠다고 봐줬더니 초코파이 가져와서 수줍게 내밀면서 "제가 맘에 드는 사람한테만 주고 있어요~" 할 때. -> 처세술 뛰어난 녀석...넌 이다음 절간에 가도 새우젓 얻어 먹을거다. 나와 취향이 비슷해서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서로 침튀기며 열띤 수다를 떨 때 -> 흑, 사실 이래보여도 선생님이 너네랑 나이차가 X년 밖에 안나서 말이지! 온라인에서 만났다면 서로 '모모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ㅠㅠ 남자애들의 되도 않는 눈웃음과 애교가 작렬할 때. "아흥~선생님 이번 한 번만요~" -> ...이번엔 넘어가지만 딴데가서 하지마라... 젊게 볼 때. "샘 몇 살이세요? 음...스물 둘? 스물 셋?" -> 니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 - 이럴 때 패주고 싶다. 도서관 취급 안 할 때. "도서관이나 대여점이나 그게 그거잖아요? 만화책이랑 판타지 좀 들여놔주세요." -> 넌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교사 취급 안 할 때. "솔직히 선생님 얼마 받아요? 도서관 관리 직원하려면..." -> 사실 이것이 스트레스의 요인 중 하나. 아직 사회에서의 사서교사의 인식과 입지에 대해 앞으로 평생 고군분투해야 함을 절절히 깨닫는 부분. 교사 공간에 침투(?)해서 책상 서랍 열어보는 등 무례하게 굴 때. "샘 여기 사탕 제꺼!" -> 학생으로써 선생님께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 아니 그리고 왜 하필 먹을 걸 훔쳐가냐고!ㅠㅠ 다른 학교랑 비교할 때. "우리학교 도서관 꼬졌어요! 중학교 때 도서관은 훨씬 넓고 크고 책도 더 많고..." -> 그럼 중학교로 돌아갓! 기껏 신간 들여놨는데 책 없다고 투덜댈 때. "아 솔직히 진짜 읽을 책 없네. 쩔어요." -> 네녀석 말에 내가 더 쩐다. 자기가 책 많이 읽는다고 거만하게 굴 때. "우리학교 애들 수준 솔직히 너무 낮아요. 대출 1위가 강풀책이라니 부끄러워요." -> 지금 네놈 손에 들려있는 '드래곤 라자'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바이오. 아니 물론 라자는 나도 좋아하지만. (...) 기본적 개념을 내다버린 놈들을 볼 때. -> 사실 여기에 기타 모든 사례 포함. 경우가 너무 많다. 종 쳐도 '선생님이 아직 안 왔다'고 하면서 교실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거나, 말버릇 고약한 놈들이라거나, 버릇없게 군다거나, '학생증 없으면 대출해 주지 않겠다'는 것을 제일의 원칙으로 세우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해줘도 그냥 무조건 해달라고 짜증낸다거나.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늙게 볼 때. "샘 몇 살이세요? 음..스물 여덟? 스물 아홉?" -> 넌 오늘 끝나고 좀 남아라. 개인 상담 들어간다. 애들은 참 영악해서, 열 번 중에 여덟 아홉번쯤은 미운짓을 하고 한 두 번만 이쁜짓을 합니다. 근데 그 한 두 번으로 여덟 아홉의 미움을 덮는다니까요. 미운짓 여덟 아홉 때문에 애들말로 정말 '쩔어가다가' 딱 그 한 두 번 때문에 일할 맛 납니다. 이런 초딩의 탈을 쓴 고딩놈들 같으니! 엎어놓고 곤장 백 대쯤 쳐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가도 안녕하세요~하면서 고개를 꼬박 숙이는 애들을 보면 그냥 또 슬슬 풀어져버리고. 어른을 농락하는 무서운 놈들입니다. 요즘 애들은. 학기 마무리 때문에 정신없이 보내고 오후가 넘어가면 늘어지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래도 진짜, 애들 때문에 웃게 되는 일이 소소하게 참 많네요. 오늘은 다독자 시상을 하려고 상장을 만드는데 옆에 와선 특이한 상장을 만들어달랍니다. 자기 별명이 흑염소니까 그거 관련으로. 몰래 남는 상장 종이로 이름 흑염소, 등급은 몸보신 1등급, 국민 건강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므로 이에 상장을 수여함...같은 걸 만들어줬더니 좋아 죽으려고 하는군요. 옆에 있던 친구는 비버라고 해서 연못 수질오염에 지대한 공헌을 한 환경파괴 1등급 상장을 만들어 줬습니다. 상장에 또박또박 박힌 궁서체의 압박이 크군요. 여하튼 녀석들은 신났습니다. 1학기 동안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결국 애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시 태어나도 난 이 직업을 선택할래요.
그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그는 언제나 항상 내 오른쪽에 서서 걸었다. 무의식의 발로였는지, 의도하고 그렇게 나를 왼쪽으로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그의 오른쪽에 서 있더라도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의 왼쪽 팔에 부딪히면서 걷고 있게 되었다. 일부러 백을 오른손에 들고 그를 무심코 나의 왼쪽으로 보내보려는 시도도 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그는 대부분 내 오른쪽에서 걷기를, 자신의 왼쪽에 내가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 오른쪽 시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그는 항상 마음 아파했다. 나야 뭐 태어날 때부터 그래서, 별로 불편함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순수하고 매사에 진심인 그에게는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한쪽 눈을 찡긋 감아보면서 "당신이 보는 세상은 이렇게 보이는군요" 라는 그의 말을 내가 잊을 수 없는 것도 사실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연애 초 흔히 늘어놓는 닭살 소리들도 여럿 있겠으나, 그는 그런 말도 했었다. 내 오른쪽 몫까지 자기가 많이 볼테니까, 왼쪽은 자기만 보아달라고. 찡하니 감동도 받고 사랑스러워서 웃었으나 성실한 그는 정말로 그 말을 실천하려는 듯 했다. 언제부터인가 데이트를 하면 그는 늘 내 오른쪽을 고집했다. 물론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 나로서는 오른쪽의 지역이 사각지대에 해당되니, 그가 있어준다면 불시에 나타나는 장애물 방지에 도움이 되겠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싫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오른쪽의 멍한 눈동자보다 생기가 도는 왼쪽 눈의 눈동자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기 연인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최후의 자존심 줄다리기랄까. 나로서는 당연히 왼쪽 눈이 있는 왼쪽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는 은근슬쩍 내 오른쪽의 위치를 고집했다. 그가 오른쪽에서 걷다 가끔 나를 내려다보는 것을 느끼면 조금은 속상해졌다. 예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나은 쪽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고. 마음속으로만 종알종알 외치면서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쭐레쭐레 걸어다녔다. 걷다가 약간 시무룩해지는 기분도 들 것 같을 때, 그가 큰 손을 머리에 얹고 쓰다듬어주면 그래도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기뻐졌다. 그와의 이별 후에는, 드디어 백을 오른쪽으로 들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오른쪽으로 백을 들던 습관이 있던 나로서는 그와 만나는 동안 왼쪽으로 들고 다니느라 불편했는데 이제는 부담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편한대로 백을 들다가도 가끔, 이렇게 높은 여름의 햇살이 내려비칠 때면 그 싱그런 여름을 닮은 미소를 지닌 그가 옆에서 걷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가 내 왼쪽에서 걸어주기를 내심 바랐지만 끝끝내 오른쪽을 우직하게 걷던 약간은 고집스러운 그 콧날과 큰 키가. 그가 오른쪽에 있어서 약간 시무룩하기는 했어도, 사실은 그 듬직함과 나에 대한 배려가 그대로 와닿아서 그건 그것대로 행복했던 그 알싸한 추억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그가 오른쪽에 있든 왼쪽에 있든 어느쪽이든 그저 행복했을 것이다. 싱싱한 여름의 한가닥 바람이 머리 위로 한바퀴 불고 지나가면, 그 시절 상냥한 그의 마음이 떠올라 그렇게 같이 들뜨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의 왼쪽, 그리고 나의 오른쪽, 우리 사이에 부드럽게 불어오던 행복했던 시절의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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