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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의 맛 - 마리오네뜨님의 이글루에서 트랙백합니다.
다들 첫키스, 첫키스하고 목을 매는데 내 첫키스는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별로 마음에도 없던 오빠, 얼떨결에 키스를 당해서 그게 내 첫키스였고 '키스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귀게 되었지만 역시 마음이 없었던지라 백여일간을 참다가 곧 끝나버렸다. 그냥 첫키스를 하면서 축축하고 미끌해서 별로였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이런게 키스라면 사람들은 왜 키스에 목을 매는걸까?'라고 그냥 머릿속에서 궁금해 하고 있었을 뿐.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났다. 첫 데이트였던가, 유원지의 케이블카에서 나란히 앉아 내 손을 꽉 쥐고 있던 그 사람은 한참을 머뭇머뭇하다가 말을 꺼냈다. "저...뽀뽀해도 괜찮아요?" 순간 엄청나게 당황하고 뭔가 우스우면서도 부끄러워져서, 간신히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응"이라고 대답했고, 허락이 떨어진 후에도 그 사람은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쥐어짜서 입술을 대었다. 감은 눈 너머에 그의 떨리는 입술이 느껴져서 나도 숨을 죽일만큼 긴장했다. 그러고 나니 왠지 눈물이 나더라. 단순히 입술만 대고 있던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설왕설래가 되면 키스라고 하던가. 그래서 우리의 첫 키스는 그 사람이 졸업한 고등학교 운동장의 스탠드, 밤 하늘 아래가 되었다. 그 처음하는 키스조차도 다시 한번 먼저 "저기...뽀뽀해도 괜찮겠어요?"라고 묻던 사람. 정말이지, 누가 신중한 성격 아니랄까봐. "그런 건 묻지말고 해요!"라고 내가 말하고 나서야, 쑥스럽게 웃으면서 눈을 감고 다가오던 사람. 우리의 첫키스에서는 막 빨아놓은 빨래의 향기가 났다. 사람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향, 체취라고 하던가. 그 사람에게서는 언제나 빨래향기가 났다. 막 빨아서 널어놓은 빨래에 코를 묻고 있으면 은은하게 올라오는 특유의 풋풋하고 알싸한 향기. 그 신선한 향이 그 사람과 있으면 언제나 코끝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웃으면서 "당신한테는 빨래향기가 나요"라고 말해주었고, 그 사람은 왜 하필 빨래냐고 황당해했지만 나는 그 향을 정말로 좋아했다. 민들레영토 커플석에 신세를 참 많이 졌더랬지. 학생이라 가난한 우리들의 주머니 덕분에 장소 이동을 계속하면 돈이 들었으니, 우리는 민들레영토의 커플석을 십분 활용했다. 아늑하고 어두운 곳에서 열심히 키스를 했었다. 눈만 마주치면 씨익 웃다가 키스하고, 음료수 마시다가 키스하고, 상영해주는 영화에서 키스씬이 나오면 우리도 하고. 미용실에 파마하러 갔다가 패션잡지를 뒤적이면서 연애코너에서 '굿키서, 이렇게 하면 될 수 있다', '키스의 종류' 등등 열심히 키스에 관한 페이지를 읽어 보았음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굿키서는 되지 못해도 배드키서는 되면 안되잖아. 뭐 그런데 버드키스, 햄버거키스, 프렌치키스, 풍선키스...별 이름도 오묘한 것들이 잔뜩 있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연애초짜였던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뭐 입술만 가볍게 여러번 부딪힌다든지, 입술을 대고 있는 상태에서 풍선 불 듯 바람불면서 장난친다든지, 상대의 아랫입술을 햄버거 먹듯 부드럽게 끼워문다든지...배우지 않아도 하는 키스, 오오 정녕 인간의 본능이여 대단할진저. 키스하면서 눈을 감는건 당연한 에티켓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제와 고백하건대 나는 종종 눈을 슬그머니 뜨곤 했다. 왜냐면 어느날 무심코 살짝 눈을 떴을 때 건너편에 보인 그 사람의 진지한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보다 긴 속눈썹이 너무 예뻐서, 납작한 내 코같지 않고 우뚝하게 솟은 콧날이 좋아서. 그 모습들이 계속 보고 싶어서, 사실 나는 키스하면서 슬쩍슬쩍 눈을 떠보곤 했다. 나보다 그의 키가 25cm가 더 커서 나는 매번 목이 꺾여라고 고개를 젖히고 그 사람은 고개를 한없이 숙여야 했던 힘든 키스였지만, 그래도 그 순간은 그런 것들을 다 잊고 있을 만큼 달콤했으니까. 키스의 맛이 무슨 맛이냐고 물으면 참 애매하다. 정답은 그거거든. 떡볶이 먹다 키스하면 떡볶이 맛이고, 소주 먹다 키스하면 소주 맛이고. 뭐 별건가. 단지 키스의 맛을 혀로만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건 말할 수 있겠다. 머릿속에서는 짜릿함이, 눈은 그 사람의 떨리고 있는 속눈썹을, 코에는 향긋한 빨래향기, 입에서는 부드러움, 귓가에 와 닿는 얕게 새어나오는 숨소리, 팔에 느껴지는 미세하게 떨리는 상대의 어깨, 그리고 키스가 끝나고 서로 눈이 마주칠 때 쑥스럽게 베시시 웃는 그 미소까지. 그 모든 감각을 총 동원해서 마음을 열면 느껴지는 맛이 있다고 하면 될려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닌 모든 감각에서 느껴지는 그 복잡하고도 다양한 맛을, 무지개빛처럼 함께 어우러져서 다가오는 그 총천연색의 감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적절한 단어를 찾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찾기는 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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