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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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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괴로워하고 선생님들은 신나는 기말고사 기간이다. 일찍 퇴근의 행복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다만 한 시간 넘도록 멍청하게 서 있어야 하는 시험 감독이 좀 괴롭다. 정감독으로 들어가면 사인도 하고 해서 덜 지루한데, 부감독으로 들어가면 이건 정말 고문이다. 뒤쪽에서 애들 몰래 입을 가려가면서 하품을 쩍쩍 해대다가 시계 바늘을 한 번 쳐다보고, 괜히 교실 뒤쪽을 거닐면서 학생들의 뒤통수 너머 OMR카드 답안지를 슬쩍슬쩍 살펴본다. 50분 감독이면 또 모르는데, 90분쯤 감독에 걸리면 이건 제대로 멍 때리고 있는 것도 지친다. 그럴때면 정말 있는 힘껏 어릴적부터의 상념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씹고 또 되씹는다. 인생의 모든 기억들을 반추하며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모든 생각들을 달려가다가 흠칫 놀라 현실로 돌아오면 이제 겨우 십 분 지났다. 한 십 초쯤, 컨닝하는 녀석 있나 없나 눈을 휘번득 해 보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풀고 있을 뿐 별 반응도 없고 다시 추억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맥을 놓쳤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소소한 수수께끼들, 이른바 '오리와 여우와 옥수수를 가진 농부가 배 한 척을 타고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 단 농부가 없으면 여우는 오리를 잡아먹고 오리는 옥수수를 먹어버린다.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것은 한 개뿐' 같은 강건너기 퀴즈같은 것 몇 개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평소땐 이 악물고 매달려도 안 풀리던 문제들이 왜 이리 또 잘 풀려. 의외로 잘 풀어버린 자신을 탓하며 시계를 보면 이제 오 분 지났다. 애들이 푸는 문제가 궁금해서 슬쩍 뒤쪽에서 시험지를 넘겨다보면 정녕 이것이 까만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로구나. 일반적으로 '선생님' 이라고 하면 애들은 모든 것을 알 거라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대학에 가면 자신의 전공 외에 다른 분야는 문외한이 되어가니 솔직히 고등학생인 니들이 더 똑똑할걸. 너희는 푸는 문제 나는 못 푼단 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니 저런 문제들을 풀 당시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잠시 미쳤었나봐. 그때 나는 무려 삼각함수도 풀고 연립방정식과 미적분도 풀었어. 사바나 기후 따위의 세계지리도 외우고 화학식도 세웠고 르네상스 문화를 외웠고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의복사도 줄줄 꿰고 있어야 했어. 우와, 대단하다 과거의 나! 다방면에 걸쳐 천재였던걸까?! 문제는 시험 다음날이 되면 새까맣게 잊어버린다는 데 있었지만.
...같은 생각을 하며 시계를 보니 이제 이십 분 남았다. 후아아아암.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시험지에 열기를 쏟아내는 애들에게는 정녕 미안하지만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불순하고도 평안한 생각을 하며 교실을 서성인다. 불과 몇 년전의 내가 저 자리에 앉아서 불안과 긴장으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짓누르며 시험을 보고 있었지. 그때만 해도 내가 저 교단 앞 공간에 서서 "몇 분 남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다소 근엄하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확신은 없었는데. 사실 지금도 실감은 안 나지만. 계속 생각에 가지치기를 하다보니 고대하던 종이 울린다. 덜그럭거리는 의자 소리와 함께 부산스럽게 답안지들이 걷히고 "야, 몇 번에 뭐야?!" 하는 고함이 들린다. 반에서 일등인 아이의 시험지를 뺏아서 반장이 칠판에 답을 적는다. 탄성과 환호가 오가고 진짜 저거 확실해? 같은 외침이 오간다. 나 때에도 그랬던, 몇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시험날의 교실 풍경. 답안지를 정리하고 있을 때 교실 뒤칸에서 시험지를 책상에 놓고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꼬옥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절박함과 진지함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로구나. 이런 간절함, 진지함, 노력에 대한 댓가, 마인드 컨트롤...어떻게 보면 '너희가 외운 것을 테스트하는' 시험 자체보다도 더 너희가 성장하게 되는 부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날이 오겠지. 시험은 어떻게 보면 그런 것인지도 몰라. 지금 외운 것은 나중에 대부분 잊어버리겠지만 '싫어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관문'을 통과해 나가면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그런 하나의 경험. 인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경험들을 너희는 지금 막 겪어나가고 있다고. ........라고 선생님이 말하고 있으니까, 남은 시험 최선을 다하란 말이다! 오늘 시험 끝나고 피방 가자고 떠들던 네 이놈 남자녀석들앗!!! 사실 샘도 피방가려고 했는데 너네 때문에 흠칫했잖아.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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