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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 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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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날치고는 정말 따뜻한 하루였다. 6년전의 나는 덜덜 떨던 수험생이었는데, 어제의 나는 본부요원 감독관으로 새벽같이 컴컴한 시간 학교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담요 뒤집어 쓰고 밤을 꼬박 새운 채 선배들을 기다리는 안쓰러운 응원단들. 덕을 쌓아두거라, 내년에는 너희가 받으리라.
- 본부요원은 솔직히 말하자면 시험 감독관 중에서는 편한 일 중 하나라고 하겠는데(일단 본부석에 있을 수 있으니까)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기도 하다. 게다가 사실 내 짬밥으로는 본부석에 있을 짬밥이 아닌데 어쩌다 이런 행운을...원로나 부장급 선생님들과 나란히 일렬로 앉아서 시험지 정리하는 나를 보고 교장 선생님이 지나가다 한 말씀 하셨다. "릭스 출세했구만!" 주변 선생님들이 뒤집어지셨다...쪽팔린다. 교장 선생님 한 마디에 움찔하는 건 6년전 학생때나 지금이나. 근데 우리 교장 선생님은 왜 항상 지나가실 때마다 날 갈구시는거임미...완전 손녀뻘이라고 애 취급하신다.ㅠ - 들어온 답안지에 오류가 없는지 몇 번이고 체크한다. 내가 보고 보고 또 보고, 옆의 선생님과 교환해서 다시 체크한다. 내가 담당한 고사실의 어떤 학생이 계속 답안지에 이름'만' 안 쓰고 있다. 이건 무슨 대인배의 배짱이냐. 점심시간에 소환해서 주의를 줬건만 다음 시간에도 이름을 안 쓴 그 대인배 녀석은 끝끝내 하루종일 이름을 안 썼다. 이름도 멀쩡하던데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는게냐. 덕분에 내가 내내 이름 써줬다...이러면 필적 감정에 자필로 써 둔 문장이 무상하지 않느냐. - 컴컴한 저녁이 되어서야 정리가 대충 끝났다. 수표가 들어있는 돈봉투를 받으니 감동이 찡...하진 않고 입에서 단내가 올라올 지경이다. 진 빼면서 수능 본 수험생들, 고사실에서 감독한 감독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돈 벌기 쉽지 않구나. 회식하러 가자는 분위기에서 눈이 너무 감겨서 먼저 집에 가겠다고 하고 나왔다. 뱃속이 허하면서 찌르르하고 자꾸 위액이 역류하는 느낌이다. 개운한 게 먹고 싶어서 집에 가는 길에 라면을 먹었다. 현금으로 돈 벌어놓고 오늘의 저녁 메뉴는 라면...이 뭥미 끝까지.ㅠㅠ - 영수가 난이도가 있었다. 상위권 변별력에는 좋겠지만 중하위권인 우리 학교 아이들은 타격이 크겠구나. 논술로 승부수를 띄우기에도 우리 애들의 문장력을 보면...아이고 그저 한숨 뿐. 끝났다고 풀어질 일이 아니다 욘석들아.ㅠㅠ - 6년 전 수험생이었던 나는 마중나온 언니와 엄마를 보고 그냥 무덤덤했고, 부대찌개를 먹으러 갔었다. 예년에 비해 점수가 오를 거라고 언론에서는 계속 떠들어댔는데 나는 단호하게 '어려웠다니까. 수험생 체감으로 어려웠다는데 뭔소리야. 저거 구라뻥이야. 점수 나오면 다 뒤집어져.'라고 호언장담했다. 너무 담담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오히려 얘가 못 보고 자기 합리화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약간 화까지 내셨지. 사실 내가 생각해도 무슨 배짱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확신하고 있었고 수험생의 체감으로 느낀 본능은 다행히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성적표가 나왔던 날 원점수가 가채점 점수와 완벽하게 동일한 걸 보고 스스로도 어유 이 지독한 기집애. 하고 중얼거렸더랬지. 찍은 거 세 개쯤 더 맞아주거나 답안지에 잘못 체크해서 정답을 맞춰주길 바랬는데 끝끝내 그런 행운도 나에겐 없더라. 대박이라거나 그런 게 있는 체질은 아니었지만 모의고사랑 동일한 원점수가 나오는 이 허탈함은 또 뭐냐. 12년 동안 난 뭐한거임. 난이도가 높아서 모의고사 점수를 유지한게 그 해 잘 본거라면 위안이긴 위안이었지만, 나도 한 번쯤 확 상승하는 숫자를 보고 싶었다고. 덴장. 그런 시절도 있었지. 6년 전에는. 다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하다. 여하튼 수능 끝난 고3이 이젠 제일 부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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